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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익숙한 파업과 불확실한 여행

기사승인 2024.03.06  20: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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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하 경북권 질병대응센터장

소위 ‘의료파업’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사단체 간에 갈등이 증폭되면서 의료공백이 우려되고 있다고 한다. 파업이 계속되면 병원에 매달려 사는 간병인, 숙박업 등 여러 사람이 먹고살기 힘드니 하루빨리 협상과 중재를 통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만 시끄러운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먹고 살기 힘들어진 성난 농민들이 트랙터 900대를 몰고 EU 본부 문턱까지 진격하며 벌써 두 달째 시위 중이다. 그렇다면 파업이 여행업계에 어떤 파급효과가 있을까 ? 당연히 불안한 심리가 가동되어 예약이 취소되고 호텔 객실 점유율이 떨어지는 등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예상치 못한 파업은 자연재해와도 같을 것이다. 

실제 23년 3월 캘리포니아를 강타한 폭설로 인해 한국인들이 많이들 찾는 요세미티 공원이 폐쇄되면서 LA한인 여행업계는 예약취소 등으로 비상이 걸린 적이 있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는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는 않았다. 파리의 호텔 객실 점유율은 코로나19 유행 기간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높았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유행기간 동안 참아왔던 여행이기에 예약을 취소하지 않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비슷한 기간에 사법개혁 반대 시위가 있었던 이스라엘에서도 호텔 예약률이 코로나 이전보다 높은 것으로 보아 그런 심리적 요인이 당연히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랑스의 경우에는 그런 심리적 요인 이외에도 다른 요인이 있을 것 같다. 그건 파업에 대한 예측과 탄력적인 대안 마련이 일상화된 지역에서 나타나는 경향일 수도 있다. 원래 프랑스를 포함해서 유럽은 파업이 일상화된 나라다. 

TV나 라디오 아침 방송에서 그날의 파업 상황을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오늘은 누가 어디서 파업을 하고 있으니 그곳을 우회하거나 피해서 일상을 유지하는 노하우를 저마다 갖고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파업에 대해 특별히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도 많지 않아 보인다. 타인에 대한 관용을 중시하는 톨레랑스(Tolerance)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어느 직종이나 돌아가면서 파업을 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파업에 아주 익숙한 국가이기에 그런 현상에 맞는 사회적 시스템이 거의 자동적으로 가동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경찰이 시위를 하면 헌병이 폴리스 라인을 지키고 헌병이 파업을 하면 경찰이 대응하고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파업하면 보조교사가 메꾸는 방식이다. 플랜 B를 통해서 파업 중에도 최소한의 일상을 유지하며 사회가 돌아가는 것이다.

파업에 익숙한 유럽에서는 각종 방송매체와 SNS를 통해서 철도, 공항 등의 파업 일정과 상황이 수시로 공유된다. 국내에서도 유럽처럼 파업에 익숙해진다고 가정한다면 여행업계는 이제 파업에도 불구하고 잘 돌아가는 국내 여행상품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여행상품기획자는 파업에 익숙해진 유럽을 여행하며 상품기획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파리 북역 텅 빈 플랫폼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며 딱딱한 바케트빵을 씹고 씹으면서 불확실한 여행의 정수를 느껴야 할 것이다. 에펠탑이 보이는 센강 인도 변에 수북이 쌓여가는 쓰레기를 바라보며 아이디어를 얻어야 할 것이다. 파업이 익숙해진 사회에서 여행업계가 살아남기 위한 플랜B는 아마 진즉에 준비해야 할 과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전공의 사직으로 의료대란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 의사가 인생이 뭐 별거 없다면서 그동안 고생했으니 남미여행이나 가라고 인터넷에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하필 이런 상황에서 여행이라니...정서상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의사들이 치료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여행은 보통 외롭고 힘들 때 떠난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발견을 추구하는 것도 인간의 본능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여행은 불안하다.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흥분과 설렘이 있는 만큼 불확실하고 앞을 제대로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이라는 단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몸을 격렬하게 반응케 한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여행을 떠난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이다.

혹시라도 남미 여행을 떠난 전공의가 있다면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힘들지만 아름다운 여정을 겪으며 과연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고 무엇이 우리의 삶을 설레게 하는지 여행과 삶의 기쁨을 제대로 느끼고 복귀했으면 좋겠다.

◆박종하 경북권 질병대응센터장
-질병관리청 검역정책과장
-프랑스 그르노블2대학 석사(DESS, 보건경제학)
-질병관리청 운영지원과장
-보건복지부 한의약산업과장, 사회보장조정과장
 flukepark@daum.net

박종하 flukepar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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