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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외고-의료와 여행 사이 망설임은 없다

기사승인 2023.01.08  21: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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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하 질병관리청 호남권질병대응센터장

러시아 작가 솔제니친이 스탈린 시대에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쓴 ‘암병동’이라는 소설에는 완치 가능성이 없는 암 환자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식쿨 호수까지 여행을 가서 호수에서 나오는 부자 뿌리와 차가버섯(자작나무 옹이에 생긴 버섯)을 구해서 기어코 암을 고치겠다고 끊임없이 다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뜨겁고 격렬하다.
계묘년 새해 인사말에도 빠지지 않는 문구 역시 ‘건강’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의학 등 과학기술의 발달로 늘어난 인간의 평균수명을 은근히 기쁘게 받아들이며 최소한 평균나이까지는 살고 싶다고 기대한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오래도록 사는 ‘건강수명’을 더욱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날 때부터 욕심꾸러기로 태어난 우리는 삶이란 게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생로병사’의 대명제 앞에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마치 천년을 살 것처럼 생의 모든 순간에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생명을 이어 나가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건 어쩌면 끊임없는 경쟁과 도전을 통해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생명체 중의 하나로 지극히 당연한 욕구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현대의학이 조금 민망할 정도로 가혹하기만 하다.
오늘날의 인류가 규명해 놓은 질병이 대략 3만개라고 할 때 그중에 제대로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 얼마나 될까?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분류되는 질병만 해도 6000개가 넘어가고 일반적으로 암은 5년 생존을 완치로 간주한다고 하니 아직도 갈 길은 멀고 암울하기만 한 것도 사실이다.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물어보는 오이디푸스 왕에게 예언자 타이레시아스는 ”지혜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지혜롭다는 것은 단지 슬픔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질병을 미리 진단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치료할 수가 없다면 그건 우리에게 절망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질병과 그로 인한 죽음은 인간의 오래된 숙명이다. 그렇다고 우리 인류가 무작정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폴리오와 결핵을 치료했고 겨자 가스에서 항암제를 만들었으며 유전자지도를 통해 난치성 질환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다. 최첨단 의학기술을 확보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진화해 나갈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보건의료수준이 국가마다 계층마다 차별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계층 간 건강 격차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정책적 개입과 지원이 절실한 부분으로 향후 복지정책의 핵심이 될 것이다. 국가마다 상이한 의료수준에 대해서는 다양한 접근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단순히 상하수도 시설만 설치해도 해당 지역의 영아사망율이 떨어질 정도로 열악한 의료환경에 대해서는 세계시민으로서 국가 간 연대가 반드시 필요한 영역일 것이다.

한편 상업적이긴 하지만 그것 역시 인간의 욕망에 관한 것이라면 의료관광의 활성화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의 의료는 세계 최고 효율의 의료서비스 시스템과 우수한 의료인력을 자랑하고 있다. 의료기관과 인력의 해외진출을 통해 최근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세계의료서비스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의료기기, 의약품 등 의료산업 전반에 걸친 파급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진출 대상국의 현지 사정과 네트워크에 밝은 여행업계에서는 사업연계와 협력 컨설팅을 통해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의료브랜드(Medical Korea)가 외국에 진출하고 그 우수성을 알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내 인바운드 의료관광 시장의 활성화를 불러올 것이다.

세계 의료관광 산업은 향후 매년 12.9%씩 성장해 2025년에는 1435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Allied Market Research, 2019년).
대한민국의 섬세한 의료기술과 우수한 인력 풀은 중국, 일본,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 인접 국가의 해외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지니고 있다. 외국인환자 유치채널을 확장하고 의료관광객들이 쾌적한 환경 속에서 머물며 치료받을 수 있는 휴양 인프라 연계를 디자인하는 것은 여행업계의 몫이 될 것이다. 외국인 환자 유치를 통해 관광, 쇼핑 등 연관산업의 부가가치와 일자리가 한꺼번에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망설임이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의료와 여행 사이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을 것이다. 신의 얼굴을 닮아가려는 인간의 부단한 노력 속에서 의료와 여행은 건강과 자유를 동시에 추구하는‘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함께 타야 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박종하 질병관리청 호남권질병대응센터장
-프랑스 그르노블2대학 석사(DESS, 보건경제학)
-질병관리청 운영지원과장
-보건복지부 한의약산업과장, 사회보장조정과장
-이메일 flukepark@daum.net

박종하 flukepar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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