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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

기사승인 2019.05.12  14: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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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여행에서 목포로 나와 목포 도서지역의 순환 유람선을 타고 이제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을 향해 간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의 생애를 전시한 기념관이다.

김대중,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0년이 흘렀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며 통일로 가는 희망의 무지개같이 떠오르는 나라"를 꿈꿨던 후광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의 여정에서 후광 김대중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목포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을 왼쪽에서 바라본 측면 모습이다. 19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노벨상 수상이었다.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에서 먼저 영상을 본다. 그리고 김대중의 역사와 기록물, 유물을 둘러본다. 1971년 장충단 공원에서 사자후를 토해내던 김대중,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87년 6월 항쟁, 1997년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선거 승리의 과정을 보며 어둠으로 대변되던 암울한 군사독재의 시절에서 그의 삶과 투쟁을 기억한다. 어두운 시대의 한편에서 나 또한 피 끓는 젊음이 있었다.

▲목포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의 이 차량은 국군의 날 기념식에 쓰였던 의전차량으로 2002년 10월 1일 김대중 대통령의 사열을 마지막으로 51군수지원단에서 보관해오다 이곳에 양도된 차량이다. 이 차량은 캐딜락 세단 드빌이다.

지난 2009년 후광 김대중이 폐렴 후유증 등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영면에 들어갔다. 김대중은 80여 년의 한 평생 동안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를 써온 장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30여 년간 군사정권하에서 납치와 테러, 사형선고 등의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민주주의 실현을 향한 꿈과 의지를 꺾지 않았고 결국 1998년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헌정 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를 일궈냈다.

후광 김대중의 출발은 미미했다. 그는 1924년 1월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고향 후광리에서 목포로 나가 목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해운회사에 취직해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

청년 김대중이 본격적인 정치활동에 나선 것은 지난 1954년이다. 친일파가 득세하는 것을 보고 올바른 정치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일념에서였다. 그러나 정치는 그에게 숱한 좌절과 시련을 안겨주었다. 제4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1961년 5월 14일 4번째로 도전한 제5대 민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으나 이틀 후 5·16군사정변이 일어나 국회가 강제 해산되는 바람에 의원 등록조차 못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목포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에서 김대중의 흉상을 바라본다.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은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위해 평생을 바치고 한국인 최초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대통령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모든 것이 암울했을 때 이희호 여사를 만난 뒤 만사가 술술 풀렸다. 1963년 목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내리 세 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의 의정 활동은 눈부셨다. 금융, 건설, 외교, 예산, 국방 등 다양한 상임위원회 활동을 거치면서 민주 사회를 건설하고 통일로 가는 길을 거침없이 설파했다.

정치적 입지도 다졌다. 민주당 대변인, 통합야당 민중당 대변인 정책 위원회 의장, 신민당 대변인을 거쳤다. 3선 개헌 다음 해인 1970년 김 전 대통령은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으나 선거부정 논란 끝에 당시 박정희 후보에게 95만 표 차이로 고배를 마셔야 했다.

▲ "이번에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박정희 씨의 총통 시대가 오게 됩니다." 19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은 장충단 공원 유세에서 부르짖는다. 1971년 4월 27일 투표 결과 겨우 95만 표 차이로 박정희가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다. 부정선거까지 펼쳐서 나온 결과였다.

그 후 김대중의 행보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유신 선포 이듬해인 1973년에는 일본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돼 129시간 만에 서울로 압송되기도 했다. 1976년 3·1절 기념 미사에서 '3·1민주구국선언'을 발표해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확정받아 진주교도소에 수감됐다. 1980년에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에 의해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을 주동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6.25 때 공산군에 붙잡혀 총살을 당할 뻔한 것이나 1971년 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 지원유세 차량을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을 합치면 김 전 대통령은 평생 네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그는 타협하지 않았다. 세계적인 구명운동이 벌어지자 군사정권은 그의 형량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데 이어 1982년 12월 미국 망명을 허용했다.

▲목포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 공간은 열린 공간으로 가족과 함께 자료를 보며 현대 정치사의 한 획을 그은 후광 김대중을 이야기할 수 있는 학습의 장이다.

1985년 제12대 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한 김대중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투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그러나 제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영삼과의 후보 단일화 실패로 비난을 받은데 이어,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도 패배하는 아픔을 겪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1995년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정치활동을 재개한 김대중은 1997년 자유민주연합의 김종필 총재와 이른바 DPJ 연대를 통해 여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다.

▲목포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에서 그의 유품을 본다. 노벨평화상 기념메달, 학적부, 연설문, 옥중서신, 생활소품 등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김대중 도서관에서 협조 받고 시민 소장 자료를 기증받아 총 4830여 점이 있다. 이희호 여사로부터 사저에 보관한 유품인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 당시 입었던 턱시도와 한복도 있다.

이때까지 김 대통령은 숱한 투옥, 망명, 연금을 당했다. 그러나 그 시간을 분노하거나 아파하면서 허비하지 않는 대신 역사, 철학, 경제, 문학서적 등을 두루 섭렵하는 등 자기연마에 주력했다. 옥중 독서와 사색은 '대중경제론'과 ' 3단계 통일론' 등 그의 대북 정책과 생산적 복지정책 등의 밑거름이 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하자 자신을 그토록 핍박했던 독재자와 군사 지도자들을 용서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서 풀어줬다. 그는 신앙은 그를 인내와 화해, 그리고 용서라는 삶을 살면서 이 나라를 국가부도에서 구하고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도록 도와준 등불이었다. "국민들이 내 편이기 때문에 나는 결코 두렵지 않다"라며 군사정권하에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민주화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김 전 대통령은 이제 파란만장했던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한국 민주화의 상징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그리고 오늘 그 역사의 발자취를 본다. 치열했던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바라본다. 김대중의 사상과 정신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이다.

▲19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하여 의회 정치가 사실상 무력화되자 김대중은 야당 정치가가 아닌 재야 민주화 운동가로서 1972년부터 1987년까지 박정희 유신정권과 전두환 독재 정권에 맞선 민주화 투쟁을 전개했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김대중이다.

김대중은 다양한 사회 계층의 사람들과 대화함으로써 "대화는 적과도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실천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12대 국회의원 선거의 지원유세에서 마주한 김대중의 언변은 거칠 것 없이 자유 자재했던 기억이 새롭다.

김대중은 과거 자신의 양심으로부터 자유롭고 현재를 꿰뚫어 보며 미래의 실천을 담보한 지도자다. 내가 갖고 있는 김대중의 책에는 역사 해석, 문제의 분석과 해결, 미래에 대한 선견적 지혜가 공존한다. 오늘 다시 한번 김대중 정신의 공감을 확대한다. 여행은 그렇게 정치와 삶에 대한 큰 보탬을 더한다.

▲김대중은 생애 마지막 대중연설이 된 2009년 6월 11일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 연설에서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으로 자유와 서민경제를 지키고, 평화로운 남북 관계를 지키는 일에 모두 들고일어나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듭시다"라는 비장한 메시지를 남겼다.

Tip
목포시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 찾아가는 길 주소: 전남 목포시 삼학로 92번길 68
전화: 061-245-5660
개관시간: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휴관일: 월요일, 휴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1월 1일

 

엄금희 기자 ekh@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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